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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Crime(사기)

[범죄] 테드 번디 - 연쇄살인계의 귀공자 사이코패스

 안녕하세요. 정확하게 1년하고 4개월만에 쓰는 범죄 파트로 찾아뵙게 된 삼식이입니다. 지난편의 와인 사기범인 루니 쿠니아완을 마지막으로 많은 공백이 있었지요. 게을렀던 필자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흑. 사실 어떤파트를 쓸까 하고 많이 생각을 해보았었습니다. 사기계쪽으로 많은 생각을 두었었는데 이번에는 좀 심란하면서도 유명한 인물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지더군요. 물론, 너무 오랫마넹 쓰다보니 정보 ㅁ모으는것도 일이고, 설렁설렁 쓸겸해서 유명한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금일 포스팅할 인물은 '테디 번드'입니다. 동양쪽에선 많이 안알려졌지만, 이름은 한번쯤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그 이유는 즉, 서양에선 엄청나게 유명하고 연쇄살인이란 주제나 이슈가 나온다면 꼭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이 테디 번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유영철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명하면서도 악독한 인물입니다.

(테디 번드. 잘생긴 외모와 성공한 사회의 모습이 특징.)


[테디 번드의 탄생]

 테디 번드의 풀네임은 로버트 테디 번드 (Theodore Robert Bundy). 그는 1946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인 샘과 어머니인 엘리너 코웰 부부아래에서 누나를 둔 가정으로 생활합니다. 유년시절 자체는 평범하디 못해 그릴에 소시지를 굽는 사진이나 낚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는 모습등이 찍힌 사진에서,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유복하게 살은듯 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겉보기엔 이상이 전혀 없는 유년시절이지요.

 그러나 사진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그럴뿐. 실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버지인 샘은 심각한 인종차별 주의자에 술주정꾼이었고 틈만나면 그의 아내를 폭행하고 애완동물과 테드 역시 폭행합니다. (이후 엘리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테드는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장록속에 갖혀 허리띠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3살이라는 어린나이에는 너무나 가혹하였고 그는 어린 나이에 그의 부모가 자고있는 베게밑에 칼을 넣어둘 정도로 비정상적이게 성장해갑니다. 그러나 테디가 두들겨 맞을때마다 그의 누나는 테드가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있을때 그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합니다. 그렇게 테디가 5살이 될 무렵 누나는 결혼을 하게되고 분가를 할때 테드 역시 같이 누이를 따라가게 됩니다. 

(테디번드와 그의 누나.)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살아갈 날을 생각하는 테드는 앞으로 행복할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그의 매형이 그를 폭행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영문도 모르고 매형은 테드를 싫어하여 두들겨 맞게 되지요. 게다가 자신을 돌보아 줄줄 알았던 누이는 매형과의 사이에서 낳은 4명의 자식을 보살피느라 그에게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테드는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테디에서 악마로]

정상적인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은 테드이지만, 공부 하나는 열심히 하게 됩니다. 머리도 좋고 성적도 뛰어났지요. 그러나 유년시절의 영향에 의해 사납게 역정을 반복적으로 내는 등 성질때문에 교사들도 애를 먹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에는 그는 이미 상습적인 관음증 환자에 도벽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는 자신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데 그에게는 양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 타인을 욕망 충족을 위한 존재로 밖에 보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남들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정상인들의 행동을 흉내내는 법을 배우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그가 살인죄로 구속되기 전까지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그의 어두운 기질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96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테디 번드는 1년간 공부를 하고 난 뒤 워싱턴 대학교로 편입하게 됩니다. 이 학교에 입학하여 '스테파티 브룩스'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3년간의 연애이후 스테파니측에서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하게 됩니다. 번디의 집착과 특유의 성격에 의해서인데요.

 스테파니는 테디에서 '무언가 결여되어있다.'라고 말하게 헤어지게 됩니다. 참고로 테디는 그에게 있어 스테파니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합니다. 테디는 스테파니를 잡기위해 수십통의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고 학교를 자퇴하고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내게됩니다. 

(구글에서 떠돌아다니는 사진. 진위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더불어 이때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누나라고 믿고있던 사람이 자신의 친모였다는 사실마저 알게 됩니다. 그의 친모가 테디를 임신할 당시 미혼모였고 당시 역시 미혼모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사실이였기에 그 사실을 감춘채 그의 조부모가 부모행세를 했던 것이였지요. 그가 믿고있던 부모가 왜 그를 싫어했는지 아구가 맞추어지며 본인이 사생아라는 사실. 그리고 그의 친모인 누나가 매형과 결혼을 하고 본인이 아닌 다른 자식들에만 신경을 더 쓴 사실에 더욱히 악독해져갑니다.


[살인의 시작]

 그의 첫 살인은 1974년 1월에 일어난 18세 여성 살인미수 사건으로 시작되며 이후 그가 워싱턴주에 거주하는 동안 여러달에 걸쳐서 최소 7명이 살해됩니다. 이후 9월에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사후에 유타 대학에 등록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살인은 계속됩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얼마뒤 토막난 시신이 협곡에서 발견되지요. 여기서 멈추지않고 콜로라도까지 진출하여 계속하여 살인범죄를 일으킵니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테디 번드가 살해한 여성들 대부분은 스테파니와 막연하게 닮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흑발에 가운데 뚜렷히 갈라져있는 가르마 머리. 단정한 머리의 지적인 여대생들이 주 타겟이였습니다. 이는 실연의 상처가 그에게 범죄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테디번드가 살해한 여성들. 실제 피해자의 수는 훨씬 더 넘을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그가 살인한 정확한 피해자의 수는 현재까지 불분명하며 적게는 30명. 가장 많이 주장하는 수는 50명이며 100명이 넘는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가 여기저기 옮겨다닐때 없어지던 피해자가 많았고 입증하지 못한, 입증되지 않은 살인 사건도 많기때문. 벤드 번디 본인은 추후 사형판결집행때 뒤늦게 사형은 면제해준다는 조건을 걸고 유죄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당한 피해자수를 밝히겠다고 했으나, 사형을 원하던 유가족들의 요구를 검찰이 받아들여 테디의 주장은 거부됩니다.


그리하여 진실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체포와 도망]

 그의 살인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이어집니다. 그러나 1975년 8월 16일 유타 고속도로에서 경찰이 난폭운전을 하는 자동차를 세우고 검문을 하게 됩니다. 그 차안에서는 수갑, 송곳, 철사, 여성의 스타킹으로 만든 복면 등 의심스러운 물건이 발견되어 수상쩍게 여긴 경찰이 그 운전자를 체포하게 됩니다. 테드의 첫번째 체포였습니다. 이때 그는 1년전에 납치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여성에게 범인으로 지목받고 납치가 가중되어 15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게다가 추가로 살인사건에 대한 추가 의심도 받아 콜로라도로 이감됩니다.


그러나 1977년 6월 7일에 그는 본인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수집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고 간수가 담배를 피우러 복도에 나간사이 2층 도서관 창문을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8일만에 다시 두번째 체포가 되고 다시 그해에 몰래 들여온 쇠톱을 이용하여 통풍구에 구멍을 내어 또 탈옥을 하게 됩니다. 이 탈옥때는 콜로라도에서 플로리다주로 옮기는데 여기서도 수차례 사건들을 저지르게 되지요. 

이후 1978년 2월에 그는 12세 소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돼지우리에 버린지 1주일만에 도난차량을 몰고 다니다가 붙잡혔는데, 살인 혐의가 있는 탈주범이란 사실이 밝혀졌고,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89년 7월 플로리다 주 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됩니다.


이때 그가 사용한 가명만 해도 크리스 하겐, 케네스 미스너, 로즐랜드 순경, 리처드 버튼, 롭프 밀러 등등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세가지로 압축할수 있는데 첫번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살인자라는점. 두번째는 자신을 사랑하는 싸이코패스였다는점. 세번째는 수려한 외모에 인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1. 엘리트 살인범.

 당시 사회에서 번디처럼 살인자들이 많았고 수법은 번디보다 더한 사람도 많았으나, 테디번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살인자들과 달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기 때문이였습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형 외모에 대인관계가 좋으며 사회적으로도 지위를 갖춘 인물이지 때문이였습니다.


법대를 졸업하고 정치계에 입문하여 공화당의 젊은 정치인으로써 사회적으로 성공한 테드 번디는 연쇄살인범들 중에서도 이례적인 케이스였습니다. 


2. 나르시시스트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고 사랑으로 가득찬 인물이였다는 점 역시 부각되는 원인으로 꼽습니다. 본인의 재판에서 본인을 변호하는 행동에서도 알 수 있으며 법률상식을 통하여 사형을 계속 미루게 했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의 또다른 살인마인 게리 리지웨이를 추적할때 담당 수사관이었던 '데이비드 리처드'가 테드 번디에게 자문을 구한적이 있는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극히 흥분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고 합니다.


 3. 여성들에게 인기

 수려한 외모에 법대 출신이다보니 언론에서는 '연쇄살인의 귀공자'라고 띄워주게되어 몇몇 여성들이 그의 팬이 되기도 합니다. 팬레터가 날아오거나 그를 보기위해 재판장을 가는 등 행동읗 하는 여성도 있었으며 심지어 '개롤'이라는 여성은 재판도중 테드 번디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 행동은 파문이 큰데 앞서 설명드린 12세 어린 소녀가 살해된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재판에서 번디는 캐롤을 증인으로 세워놓고 프로포즈를 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지요. 아동 살인을 저질러놓고 재판을 모욕한 것입니다.


[사형]

1979년 6월 25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재판이 진행되어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됩니다. 이후 1989년 7월 사형 확정 10년만에 사형이 집행되었고 그의 유골은 다른 연쇄살인 사형수나 옥사한 재소자들과 똑같이, 비밀리에 장례를 치른 뒤 화장하여 모처에 뿌려졌습니다. 


[이외..]

1. 공화당 정치인이였던 테드 번디는 영부인과 악수를 한 적도 있습니다.

2. 사형집행이 있는날이면 사형집행 반대론자들의 시위가 있기 마련인데, 그가 전기의자에 사형집행이 있던날에는 사형 반대론자들이 단 한명도 오지 않았고 찬성론자만이 그의 사형을 축하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의 사형소식에 사람들은 교도소앞에서 캠프파이어를 피우고, 바베큐 파티를 열고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3. 그는 자살방지 콜센터에서 일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자살할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하네요. (관련링크)

4. 그의 대사중 유명한 대사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고, 다중인격도 아니지. 우리들은 너희들의 아들이고, 남편이야.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내일은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있을 거다."


 그 외 사형에 관한 이야기와 다른 것들도 많으나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다른 블로그에도 자료가 많으니 필요한 이야기와 살만 붙이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살인자 글을 쓰다니 기분이 영 좋진 않군요. 다음엔 사기 이야기로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착하게 삽시다. 우리.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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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일부 사이트와 뉴스를 통해 작성되었으며 틀린 사실이 있을수있음을 명시합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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