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식/etc...

스시의 역사와 회전스시-1. (Feat. 초밥의 역사와 한접시에 두개인 이유)

 안녕하세요. 삼식일류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스시(초밥)의 역사와 함께 회전초밥에 대해 포스팅해볼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도 계획과는 다르게.. 원래 Weapon글을 적을려고했는데 또 일주일뒤에 적으려던 초밥에 대해 글을 적게 되네요. 초밥의 역사와 함께 회전초밥의 역사를 적는 이유는 다름아닌 초밥의 본질이 회전초밥에 다시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니.. 밑에 회전초밥 설명전에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시작해보겠습니다~


1. 스시의 역사 (초밥의 역사)

 1-1. 스시의 시작은 보관으로 부터

 스시의 탄생은 보통 일본의 7세기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제론 기원 전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 전 4세기 무렵의 동남아시아에 생선을 보관하기 위해 쌀 안에 소금으로 절인 물고기를 넣고 발효 시킨 '여육 보존법'이 있지요. 물론 이게 스시의 탄생이라 보긴 어렵고... 생선의 보존방법에서 생선과 쌀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스시역사의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알려진 일본의 초밥은 기원 후 2세기 경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가 7세기 경부터 일본에 초밥이 전수되지요.


 어육 보존법이 알려진 일본의 시점에서는 내장을 제거한 깨끗한 날생선을 밥과 함께 소금이 깔린 판 위에 올려놓은 다음, 무거운 돌 따위로 얹혀놓고 몇주후에 밥에 의해 발효된 생선을 먹게 됩니다. 다른 문헌에서는 나무통 안에 생선과 밥을 같이 넣는 방법을 썻다고도 합니다. 밥이 발효될 때 유산균이 나오는데 이 유산균이 생선의 부패를 막았다고 하며, 아직 몇몇 초밥가게에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초밥을 나레즈시'(なれずし)'의 한 종류라고 합니다. 이 나레즈시의 특징은 깨끗한 물에서 사는 담수어를 사용하며 생선이 맛이 강하다고 합니다.


 자, 여기까지의 스시는 밥을 버리는 스시였습니다. 밥은 오로지 누룩 역활의 발효를 위한 재료로 사용되지 않았지요. 이때의 스시를 스시라 부르지않고 '붕어밥'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보관 생선이 붕어인데, 밥안에 발효시키기 위해 파 묻었기 때문인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스시의 탄생은 문헌에 따라 각기 다른 서술로 인하여 지금도 어느곳이 시초인지는 불문명하다고 하는군요.


 1-2. 붕어밥

 여기서 잠시. 붕어밥에 대해서도 알아보자면.. 설명은 위와 같습니다. 붕어밥, 붕어초밥, 일본어로는 '후나즈시 (鮒寿司)라고 부르는데 이 붕어초밥은 일본의 발효 식품인 '나레즈시 - 위에도 설명했지요?'의 일종입니다. 붕어초밥로 유명한 곳은 시가현인데 붕어중 '니고로부나'라는 종으로 만든 붕어초밥이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암수컷 모두 사용하지만 알이 배인 암컷을 사용한 붕어초밥의 가격이 더 비싸다고 하는군요. 만드는 방법은 역시 내장을 전부 제거한 뒤 소금에 3개월 정도 절인 후 소금기를 제거하고, 이후 내장이 있던 사리에 밥을 넣어 1~2년 발효시킨다고 합니다. 이후 밥은 버린뒤 먹는다고 하네요.


 1-3. 밥과 함께 먹는 스시의 시작 

 우리가 알고있는 생선과 밥을 함께먹는 스시의 시작은 110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1100년대부터는 밥과 생선에 식초를 넣어 발효기간을 줄이고 같이 먹었다고 합니다. 이 방식을 '하야즈키'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생선인 붕어를 시작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멍게나 어패류, 정어리 등을 사용하면서 시간이 흘러 정말 우리가 먹는 초밥의 원형으로 시작된 것은 1800년대부터입니다. 얼마되지 않았지요? 19세기 초 무렵, 도쿄가 에도로 불리던 시대에 에도마을에는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외식 산업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이렇게 초밥을 팔은 사람은 '하나야 요헤이'. 이 사람이 지금의 초밥으로 개량. 우리가 아는 형식. 식초를 넣은 밥에 생선살을 올려 팔기 시작했지요. 이 초밥은 우선 간편함으로 에도에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다이쇼 시대. 1923년에 관동 대지진에 의해 파괴된 도쿄 초밥집의 직공들이 고향에 돌아가 일본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이때 이 초밥형식은 관서지역형식. 관동지역형식으로 또 나뉘게 됩니다.


 - 쉬어가는 타임으로 목 스트레칭 한번 하고 갑시다. 이제 역사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히히.



  1-3-1. 관서지역 초밥

 관서지역, 즉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지방에서 만드는 방식의 초밥입니다. 일본어로는 '하코즈시'라고 합니다. 이 방식은 나무틀에 밥을 눌러놓은 다음, 그위에 생선이나 어패류를 깔은 다음 (요리에 따라 위에 야채나 해초를 올리기도 합니다.)위에 틀로 찍어 눌러 만드는 방식의 스시입니다.


  1-3-2. 관동지역 초밥 - 하코즈시

 관동지역은 지금의 도쿄지방입니다. 형식은 지금 우리가 평소 먹는 초밥의 형식이지요. '쥠초밥' 또는 '주먹초밥'이란 말로도 불리며 한입크기의 식초밥에 고추냉이를 살짝 바르고 생선이나 어패류를 얹는 형식입니다.


 1-4. 스시에 대해 정리 - 니기리즈시

 스시의 역사는 위와 같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사실과 좀 많이 다르지요. 우선 정리를 좀 하자면 스시는 처음에 고급 음식이 아니였습니다. 초장마차에서 한끼 대용으로 서서 먹거나 싸가는 형식의 형태였습니다. 가끔 '스시는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라는 분들이 계신데 이는 서서 먹던 옛날 형식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손의 온도에 의해 스시의 맛이 변형될 수 있으므로 젓가락으로 식사하시길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스시 방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참. 그리고 스시의 어원은 맛이 시다고 해서 '스시'(酸し)'라고 합니다.


 2. 그런데 왜 초밥 한 접시엔 두개의 초밥이?

 자, 그런데 스시집에 가면 한 접시에 초밥이 항상 (항상은 아니지만..) 두개씩 올려져 있는 걸 보셨을겁니다. 이것도 이유가 다 있습니다. 바로 전쟁의 잔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때는 2차 세계대전. 일본은 '리틀보이(수소폭탄)'로 폐허가 되고 이후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됩니다. 패전국으로써 당연히 다른 나라에서는 지원이 없었으며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미국의 복구 지원과 6.25 전쟁으로 일어서게 됩니다. 다만, 식량난은 여전히 극심했습니다. 다른이유보다 부족한 곡식과 어선과 어부의 부족으로 인한 어획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였지요. 

 먹을게 없어 굶어 죽는 자국민까지 생기자 일본의 총리는 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음싱영업 금지조치를 취합니다. 내용은 여관과 허가를 받은 식당 외에는 음식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식량 절약을 위해 외식을 금지시킨 것입니다.


 당연히 요식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발은 심했습니다. 식량 아끼자고 자국민의 경제활동을 막는 법. 그러나 얼마나 식량난에 절박했으면 저런법까지 나왔을까 하네요. 쨋든 이때 초밥집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서로 난리가 난 상황.


 이때 초밥집 주인 중 한명이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초밥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닌, 쌀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수수료를 받고 초밥을 만들어주는 방식을 생각해낸것입니다. 밥만 가져오면 초밥의 재료값과 만들어주는 수수료만 받는다는 뜻, 이는 요식업이 아니라 가공업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 초밥집 주인들은 이를 도쿄 시청에 건의했으며 초밥집 운영 국민들의 생계도 생각했어야 했기에 조건부제한으로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이 조건은 한 사람당 초밥 10개까지만 교환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이였지요. 이때 생선도 모잘라서 초밥 하나하나를 다른 생선으로 만들 수는 없는 상황이라 같은 종류의 재료로 초밥 두개씩을 한 접시에 담아 제공하게 됩니다. 


 생선이 부족한 상황과 일본 정부의 조건부 제제에 의했던 초밥 한접시에 초밥 두개의 법칙이 제 2차 세계대전의 폐혜로부터 시작된것입니다.


어휴 힘드네요. 회전초밥에 대한 글은 2편에서 마저 적겠습니다. 틀린점이 있다면 피드백 주세요, 오류지적 환영입니다. 좋은 정보 되셨길 바래요~

-본 포스팅은 지식백과와 지식in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본 포스팅에 틀린점이 있을 수 있음을 명시하며 인한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